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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일기

또 한 단계 성장을 했다

벌써 영어 유치원에서 데스크 업무를 한 지 2달 반 정도가 되었다. 직장 생활로 치면 정말 짧은 기간이다. 그런데 나는 이 기간에 많은 것을 얻었다.

 

 

나의 역량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내 능력을 객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성취 경험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한 신뢰도 생겼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직무는 행정 업무이다. 원생 출결 관리부터 원어민 출입국 및 숙소관리, 도서 관리, 전화상담 등 전반적인 학원의 행정 업무를 처리한다. 또한 각 층에 있는 프린터, 에어컨, 컴퓨터 등 기계 유지 및 보수 관리도 담당하고 있다. 

 

 

이 많은 행정업무를 처리하며 느낀 점은, 오프라인 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뭐하나 그냥 되는 일이 없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항상 문제가 터진다. 그리고 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끔은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다. 하지만 행정업무를 담당한 이상, 학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정 문제는 데스크 직원이 해결해야 한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말이다.

 

 

심지어 이번주에는 드라이버를 꺼내들고 난생 처음 천장에 붙어있는 텍스라는 것을 분리해내기도 했었다. 에어컨 물 새는 문제 때문이었다. 에어컨 기사를 잠자코 기다리기에는 문제가 커질 수 있어서 내가 손을 써야 했다.

 

 

현타가 오면서도 신기하고 내 자신이 평소에는 할 기회가 없는 일들을 하고 성취를 할 수 있어서 나름 뿌듯했다. 더군다나 상사로부터 꼼꼼하다, 성실하다, FM이다 라는 좋은 평가를 듣게 되어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인생에서의 큰 과제를 해결한 느낌이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느낀 이유는, 난 일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이다. 내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건 군대에서였다. 어째서인지 나는 훈련소에서부터 '나사 빠진' 병사였다. 자주 까먹고, 행동 느리고, 눈치 없고, 말귀를 잘 못 알아먹는 병사였다. 

 

 

아직도 나를 비난하던 대사가 잊혀지지 않는다.

 

 

"얘 나사 하나 빠져있다니까?"

"너처럼 실수 많은 애는 처음 본다."

 

 

관심병사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떤 일을 맡기기에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자대에 가서 몇 개월 간을 대차게 까였었다. 정말 단순한 데이터 입력 업무에서도 실수가 넘쳐났다. 게다가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강했어서 시킨 일만 하고, 게다가 시킨 일도 제대로 수행을 못하고서는 나몰라라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해서 선임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뭔가 힘든 일이 있는 거 같으면 막내 후임임에도 나몰라라 모른 척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았었다.

 

 

하나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의무생활관의 관물대를 옮겨야 하는 일이 있었었다. 그래서 선임들이 모두 관물대를 다같이 으쌰으쌰 옮기고 있었는데, 나는 다른 행정업무를 한다고 핑계 대고 1시간째 나타나지 않다가 옮기는 일이 거의 다 끝났을 때 나타났었다.

 

 

와.... 진짜 개폐급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렸다. 어리석었다. 

 

 

어차피 인간이 모두 이기적이긴 하다. 하지만 이건 이기적인 걸 떠나서 멍청했던 거다. 왜냐하면 그 잠깐 1시간 편하자고 나의 평판을 내가 존나게 깎아먹은 거니까 말이다. 군생활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때 당시 맞선임은 되게 깐깐한 FM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성격도 기 쎄고 자기주장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난 그 사람에게 눈엣가시였다. 업무 능력 떨어지고, 성실하지도 않고, 걸핏하면 실수하고 개인주의적이었던 나였으니까.

 

 

엄청 혼났었다. 심지어 다른 상사와 병사들이 있는 공개적인 곳에서 내 실수를 가지고 뭐라 하면서 나를 망신 주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원체 신경성이 높았던 나는, 그 사람을 엄청 무서워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심장이 쿵쾅댔다. 또 어떤 실수를 저지른 걸까? 또 나를 사람들 있는 곳에서 망신을 주려고 할까? 뒤에서 다른 병사들한테 또 내 뒷담을 깔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일병 생활을 하던 중 하루는 어떤 하사가 의무실에 찾아와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이랬었다. 

 

 

"너 안본 사이에 왜 이렇게 삭았냐? 야 oo아(맞선임), 대체 애를 얼마나 갈군 거야?"

 

 

그랬다. 정말 하루하루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었다.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를 맞선임이 알게 돼서 나를 갈구는 게 반복되는 생활이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실수가 생겼다. 나중에는 아빠와 통화를 하면서 서러움에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일을 못할까. 왜 이렇게 실수를 할까. 다른 사람은 똑똑하고 빠릿빠릿해 보이는데 난 왜 이런 걸까. 난 바보가 아닐까?

 

 

하지만 그 지옥같은 시간을 피할 수는 없었기에, 난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으며 내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다. 더 꼼꼼하게 확인하고, 좋지 않은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 메모장에 기록을 하고, 매일 밤 혼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내일 처리해야 할 업무를 정리하고, 혼자 질문을 던지며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연단의 시간을 지내던 중, 일병 말부터 서서히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의무실에서 같이 생활하게 된 새로운 선임이 나를 좋게 봐주었고, 일 처리가 빠릿빠릿하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렇게 갈구하던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되니 난 조금씩 밝아졌고 선임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맞선임도 나중에는 나에게 "넌 악바리가 있다"라고 하며 간접적으로 나의 그간의 노력을 알아주며 인정해주기도 했었다. 정말 울컥했던 순간이다. 

 

 

이후 맞선임이 전역하고 내가 최고선임이 되었을 때는, '의무실이 일 잘한다'는 평판이 자자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의무실 왕고'라는 위치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난 군대 전역 후에 탁월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다. 여전히 꼼꼼함이 부족했다. 생각이 짧았다. 말도 안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가장 최근까지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일 못함' 혹은 '꼼꼼하지 않음', '바보같음' 이런 컴플렉스는 극복되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비슷한 평가를 할 때면 발작버튼이 눌렸다. 자책하게 됐다. 슬펐다. 

 

 

그래서 난 이번에 행정업무를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반드시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꼼꼼하고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이란 걸 말이다. 마케팅 업무는 사실 창의력을 요하는 업무였고, 행정업무랑은 완전 성격이 달랐다.

 

 

군대에서의 경험, 최근까지 내가 저질렀던 실수 모든 경험을 종합해서 똑똑한 사회 생활을 하려고 했다.

 

 

야근도 불살랐다. 왜냐하면 겨우 몇십분 일찍 퇴근하는 것보다 내가 빨리 일을 숙지해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장기적으로 유리한 선택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적인 성격때문에 군대에서 겪은 안좋은 경험에서 배운 것이다. 그리고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에도 확인과 확인을 거듭하며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한 결과, 난 이곳의 상사가 필요로하는 사람이 되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려고 했을 때, 상사가 많이 잡았다. 직원을 구하기 힘들어서일 수도 있지만, 나의 능력을 많이 인정해주셨다. 내가 꼼꼼하고 성실하며 좋은 인성을 가졌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고 계셨다.

 

 

정말 기뻤다.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요새 더 좋은 일들이 생겼다. 처리해야 할 큰 산과 같은 업무들이 몇 개 있었는데 지금까지 실수 없이 잘 흘러가고 있다. 너무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이번주에 특히 정말 눈엣가시같았던 문제를 내가 해결하게 되어서 엄청 기뻤다. 내 사수가 원래 처리하던 일이었는데 해결을 하지 못해 나몰라라 하던 일이었다. 나도 거의 외면했었다.

 

 

하지만, 퇴사를 하기 전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나에게 떳떳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해결을 시도했고 결론적으로 잘 해결이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내 사수와 그 문제와 관련 있던 외국인이 뛸듯이 좋아했었다.

 

 

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꼼꼼한 면에서는 내가 사수보다 뛰어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어떤 방대한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이 있었는데, 데스크 직원 3명이서 같이 처리했었다. 서로 각자 정리를 하고 비교를 하며 완벽도를 높이는 작업이었는데, 내 작업물이 99.9% 완벽에 가까웠다. 오히려 사수를 포함한 다른 직원들의 실수를 잡아주느라 업무 수행이 늦어질 정도였다. 

 

 

부원장님도 이번주에 나에게 몇 번 이곳에서 알바를 할 생각 없냐고 제안하시기도 했다. 약 두달 반 정도의 단기간 동안에, 누군가에게 업무적으로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게 자랑스럽다. 내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부원장님이 진심으로 상심을 하고 원장님이랑 크게 다툴 정도로 내가 그 정도의 역량이 되었다

 

 

이제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사할 수 있을 거 같다.고생했고 다음주 마지막 3일도 남은 일 처리 깔끔하게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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